쉽게 취직을 했고 쉽게 짤렸다.
정확히 네번째 날 오전 11시 20분 정도까지 근무를 하고 말이다.
약 8개월 정도 놀았고 전에 다니던 직장은 이상하게 엑셀에 선을 긋거나 sum을 할 정도면
충분히 커버가 되는 곳이어서
나의 엑셀 실력은 면접만 가서 엑셀 잘하세요라는 질문에 항상 당당하지 못했다.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혹시 어느 정도의 엑셀 실력을 원하시는지요?
그냥 기본만 하시면 되세요.
저는 썸함수 정도인데.
저희도 다 그래요.
중소기업 혹은 1인 대표들과 일을 해보았고 잠깐 계약직으로 완전 대기업은 아니지만 중견기업 사무직도 다녀본 미약한 경험에 따르면
일정 이상의 기업은 정말 페이퍼 워크를 중시 여긴다.
솔직히 한 달짜리 그 합정에 있는 사무직은 사람이 착한 것이 아니면 그때도 짤릴 위기였다.
근무하시는 분들이 엄청 착했고 어차피 한달짜리 아르바이트이니 눈 감아 주지 않았더라면 내가 생각해도 나의 컴퓨터 다루는 실력은 그 사람들과 비교할 때 너무나도 어설퍼서 민망할 정도였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대리님도 엑셀을 잘 다루었는데
대리님이 하루 연차를 내서 과장님이 업무지시를 할 때 나는 그분이 사용하시는 단축키의 현란함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에 와~하고 감탄만 했다.
나는 모르던 엑셀 기능을 돈 받으면서 배운 셈인데 아쉽게도 더 분발을 해야겠다 이번 기회에 나도 엑셀을 마스터해야겠다는 생각 대신 와~하고 놀라고 그냥 지나 만 가버렸다.
또 다른 면접을 갔을 때 면접을 보기 앞서서 제일 먼저 엑셀을 어떻게 다루는지부터 시작하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 포지션이 욕심이 나도 나는 망했다.
이렇게 엑셀에 대한 고배를 마셔본 적이 있으면서도 각성하지 못하고, 가슴 한쪽 항상 자신감이 결여된 채로 취직만 되면 또 어떻게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첫 출근을 하는데...
인수인계하시는 분이 vlookup을 시키는데 며칠 전 너튜브에서 보긴 봤는데 실무에 들어서니 머릿속이 텅텅.
대기업을 상대로 하는 에이전시이다 보니 비록 회사 자체는 작지만 주로 하는 일이 페이퍼 워크이다.
아, 잘못 걸려들었다.
엑셀 파일을 주면서 어떤 수식을 사용했는지 보라고 하면서 인격모독을 한다.
이 분에 대해서 좀 욕할 부분이 많기는 한데 귀찮다.
그리고 오랫동안 쉬고 나니 일머리에 대한 감을 좀 놓게 되었다.
눈이 침침하고 타자가 느리고 최대한 나대지 않고 조용히 있는데
인수인계하는 상대방이 내가 작성한 문서를 보고 답답한지 자신의 모니터를 보여주는데
동료들과 채팅한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이 분 엑셀을 잘 못하네요.
아, 이 더러운 기분 어떻게 할까?
대표는 수시로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을 사무실로 부르더니
목요일 오전 11시 좀 넘은 시각에 그러신다.
미안하다야, 너한테 업무 인수인계하기가 안 될 것 같다고 한다.
요 며칠 나온 건 우리가 약속했던 연봉에 맞춰서 입금해줄게.
나 짤린 것이다.
엑셀을 못해서.
그런 얘기가 있다.
자신의 발목을 잡는 그리고 나한테 필요하고 사회에서 필요한 내용은
하루빨리 그냥 마스터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제발, 부디 나처럼 엑셀을 못해서 짤리는 일은 없기를
그리고 나는 이 글 작성한 후 엑셀 공부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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